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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미카제-리틀보이-트루먼 대통령-일왕 항복 거절

봉화사랑 2021. 3. 12. 22:43

아직 끝나지 않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으로 

진주만 대패로 복수의 칼날을 간 미국의 승리가 이어지고 

점점 세력을 확장해가는 미국에 반해 

주력 부대를 대부분 잃은 일본의 피해는 점점 더해가고

그 당시 일본제국에게 항복은 엄청난 수치

일본 제국이 선택한 저항의 방법은?

1억 총옥쇄로 1억 명의 사람들이 옥처럼 부서진다는 뜻으로 2차 대전이 장기화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패색이 짙어진 전황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 보이와 팻 맨이 떨어져 폐허가 되고 소련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황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어 일본의 지도부는 항복을 할 것인지 결정하려고 하였으나 3:3으로 결론을 내지 못함으로써

말 그대로 1억 명의 사람들이 옥처럼 부서진다는 뜻으로, 대동아공영권에서 본토인 일본과 식민지들을 포함한 인구들이 모두 합하여 1억이었기 때문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대의도 없는 전쟁에 끌려나가 단지 천황 한 사람을 위해 개죽음당하는 것이 '옥이 부서지듯' 아름다운 죽음일 턱이 없는데도,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이러한 미사여구를 만들어내는 것을 통해 태평양전쟁 말기의 일본 제국의 광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의 1억 인구 모두 전쟁에서 명예롭게 죽자는 의미 

가미카제는 너무도 잔혹한 국가의 전쟁 형태로 잘 알려진 대로 인간을 폭탄으로 사용한 자살특공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자살 공격 일본군 특공대~~~~

가미카제는 신풍이라는 바람으로 더욱 광기의 전쟁으로 미화된다. 

신풍이 뭔데....?

그 옛날 고려시대로 되돌아 가 보면 원 간섭기로 원나라의 고려 침략은 원나라의 압박으로 원과

고려군과 연합부대의 형성하여 

여몽연합군이 결성된다. 

제1차  원정군은 원종 15년(1274년) 음력 10월 3일에 마산을 출발하여

전함에는 몽골군 25,000, 고려군 8,000, 사공 6,700명 등 도합 39,700명이 승선하여 승리를 거듭하였으나 한밤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려와 많은 전선과 병사를 잃고 귀환했다.

제1차 원정에서는 60~70%만 돌아오고 30~40%의 병력 손실을 입었다.

여몽연합군 침략은 일본 입장에선 고마운 바람이 불어줘서 

신이 일본을 지켜주는 바람(신풍)이란다. 

바람의 정체는 바닷바람

매우 좋지 않았던 타이밍

이 말은 가미=신(神), 카제=풍(風)

신이 불어준 바람으로 폭탄을 싣고 날아가 미 군함에 던지겠다. 는 것으로 

가미카제 특공대가 미군함으로 돌진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오직 자실 공격만을 위해 설계된 것을 보고 

바보 폭탄(Fool Bomb)으로 불렸다.

공포 그 자체 아니었을까?

'영웅'으로 표현되고 있는 카미가제

당시 가미카제 대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내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하지?

어떤 이는 서 있을 수 조차 없어서 지상요원들이 비행기에 강제로 밀어 넣기도 했다.

선발대상은 무엇으로 정하는 것인가요?

거기 태울 사람들은?

공군 파일럿을 한 사람 키워낸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파일럿 양성에 당시 일본 제국은 투자할 자원이 부족한 전시상황으로

급하게 필요했던 파일럿 -그래서 세운 소년 비행병 학교

현실은 약 3~6개월 교육 후 바로 전장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시간과 비용도 없었던 

수세에 몰린 당시 일본 제국의 마지막 발악으로

비인간적인 일본 제국의 미친 행위에

미국은 자국민의 희생을 막고

빠른 종전을 위해

일본의 심장인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 계획을 실행하여 일본 본토를 향해 본격적으로 단행한 무차별 공격으로

도쿄 상공을 시커멓게 물들인 약 300여 대의 폭격기와 엄청난 양의 소이탄을 쏟아부은 폭격기들로

대부분 목조 건물인 일본 가옥을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미국의 소이탄 폭격으로 약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도쿄로

최태성 선생님은 소이탄은 불바다로 만드는 무기라고 설명합니다.

일본 가옥인 목조 가옥의 특성을 노린 미국의 선택~~~ 소이탄

삽시간에 도쿄를 집어삼킨 소이탄 폭격

사람들의 발길보다 빠르게 번져 나간 불길

화상을 입거나 옷이 타버릴 정도의 열기

모두가 잠든 깊은 도쿄의 밤

한낮보다 더 밝았던 불길

일본 60여 개 주요 도시에 소이탄 폭격

서민교 교수는 사실 전쟁을 끝냈어야 했어요.

몇 % 손실이 일어나면 기능이 제대로 안 될까요?

손상률 약 30%만 돼도 전투 불가한 상황에

당시에는 일본 제국이 항복하는 게 순리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고자 무차별 폭격을 가한 미국

소이탄의 크기는  보통  150∼400150∼400갤런들이 의 것을 투하하면 2,000의 고열을 내므로, 한 발로 2,500를 태울 수 있다. 폭탄·총포탄·로켓탄·수류탄 등의 탄환류 속에 소이제(燒夷劑)를 넣은 것이다.

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벼락으로 초토화된 일본의 주요 도시들~~~ 그럼에도 항복하지 않은 일본 제국

핵폭탄 투하로 끝내버리려 한 전쟁으로

가장 부자 비한 대량 살상 무기인

'리틀보이'의 등장으로 히로시마를 목표로 한 미국은 길이 3미터 무게 약 4톤으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에 부여된 코드명 리틀 보이(Little Boy)

에놀라 게이(폴 티베츠 대령이 조종)라는 애칭을 가진 B-29 폭격기가 티니안섬의 북쪽 비행장에서 이륙하여 2531 km 떨어진 히로시마에 도착하여 약 31,000 피트(9,450 미터)의 고도에서 투하되었고,

일본 시간 기준 오전 8시 15분에 해발 1,800 피트(550 미터) 상공에서 폭발하였다.

  리틀 보이는 전쟁에서 사용된 최초의 핵무기이며, 실제 사용된 두 핵무기 중 하나로 다른 하나는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 맨이다.

막대 모양의 'little boy(꼬맹이)'공 모양의 'fat man(뚱뚱이)''루스벨트처칠의 별명이기도 했다.

남태평양 티니언섬에서부터 드리우는 악몽의 그림자

왜 히로시마였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최태성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핵폭탄이 터지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기 위해서 

도쿄 대공습 이후에 초토화된 여러 도시와는 다르게 폭격으로부터 무사했던 히로시마

조선소, 비행장, 항공기 부품 공장이 있고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히로시마 ~~~

핵폭탄 위력을 보려고?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던 히로시마~~~~

일본 제국은 이 사실을 알았을까?

히로시마 레이더 관측소에서 발견한 미국 폭격기의 일본 상공 진입 상황을 파악하였으나 

갑자기? 공습경보 해제

비행기가 많지 않아서 경보를 해제했다?

도쿄 대공습 이후 이어진 일본 상공을 뒤덮었던 폭격기에 비해

당시 핵 폭격에 참여한 폭격기 4대~~~

그래서 해제한 공습경보

그러나 한낮의 태양보다 밝은 빛이 히로시마 전역을 삼켜버립시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리틀보이'

대단한 위력의 핵폭탄은

히로시마 전역을 집어삼키며 처참하게 파괴했다

버섯구름 아래는 종말 그 자체였다.

번쩍하는 빛의 습격~~~~~

그리고 꽝!!!!

그 뒤를 잇는 뜨거운 열~~~

태양 흑점 온도와 맞먹는 약 4000도의 열 폭풍

약 2,000도의 열에 노출되는 사람들

학교가 있고 공장이 있고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지만 ~~~

끔찍하게 녹아내린 피해자들의 피부

폭격에서 살아남았어도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피해자들

1945년 8월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도쿄 라디오에서는 "사람, 동물, 모든 생명을 가진 것이 말 그대로 죽음 속에 그슬렸다."는 보도를 하였다.

당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사진에는 

경각심을 불러올 핵무기의 끔찍한 기록으로

 옷이 불타 피부에 눌어붙고 

시커멓게 불타버린 피부.... 마주하기도 힘든 끔찍한 모습~~~~~ㅜㅜㅜㅜㅜ

1945년 말까지 원폭으로 약 14만 명이 사망

트루먼 대통령이 전 세계에 발표한 원폭 히로시마 투하 내용입니다. 

끔찍한 핵 폭격 이후 일본 제국의 반응은?

당시 일본 제국의 모든 결정권을 가진 당시의 일왕은 항복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나왔던 1945년 2월

당시 수상 고노에 후미마로가 항복을 종용하였으나 

전세가 뒤집혔을 때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의 협상을 위해 항복 거절 

거역할 수 없는 당시 일왕의 명

원폭 투하에도 항복하지 않는 일본 제국???

일왕의 항복 거절로 그 처절한 피해는 일본 국민들이 안고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