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미국 핵무기-맨해튼 프로젝트-트리니티 테스트-루스벨트-트르먼-진주만 공습과 미국의 대반격 핵폭탄

봉화사랑 2021. 3. 8. 23:55

핵무기는 왜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 먼저 만들었을까?

루스벨트 대통령 Franklin Delano Roosevelt(1882 ~ 1945)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인물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법학 대학원을 졸업해 1907년 변호사 개업했다.

1910년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하여

1913∼19년 윌슨 정부의 해군 차관보로 임명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하였고,

1920년 민주당 부통령후보로 지명되었으나 패하였다.

그 후 다시 변호사로 일하며 이듬해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재활치료 후 체력이 회복되자 1924년 정계로 복귀하였다.

1954년 4월 심각한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는데 이에 바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

트루먼은 대통령은 취임식을 치른 후 맨해튼 프로젝트의 담당자로부터 보고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통령인 트루먼도 몰랐던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된 핵심 인물들만 알았던 극비 연구 맨해튼 프로젝트

트루먼의 대통령 취임식 후 

당시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의 독대 신청하였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새로운 폭발물이 개발되고 있다. 는 내용이었다. 

실험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4개월 안에 강력한 폭탄을 가지게 된다. 는

지구 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비밀 프로젝트의 보안을 위해 애매하고 말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

마치 재개발 사업 이름과도 같은 

프로젝트는 본부를 맨해튼에서 시골 마을 오크리지로 이동

핵개발은 미국 전역의 약 30개 단지에서 연구하면서 보안을 위해 이름을 숨기기도 했는데 

전쟁 수행에 있어 중요한 일인 것을 알지 못하였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최종적으로 무엇을 만드는지 모르는 참여자도 존재할 정도였다. 

심지어 당시 연구 당시 청소부까지 서명을 해야 했는데 

그 내용은 전쟁이 끝나도 6개월 후에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The Gadget는 보안 유지를 위해 코드명을 사용하여 

핵무기는 왜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 먼저 만들었을까?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협상국독일, 오스트리아 등 동맹국

제1차 세계대전은 협상국과의 많은 전투가 힘들었던

독일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였다. 

우라늄은 체코 슬라바 키아 지역에 산지가 많았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체코 슬라바 키아로

독일이 핵무기 개발을 할 수도 있었는데 

소련과 연합군과의 전쟁을 하면서 

비행기 탱크  잠수함 군함

전쟁 무기 만들기 바빴던 독일

핵개발에는 엄청난 인력과 물자 자본이 필요하여 미국에서 먼저 시작하여

맨해튼 프로젝트에 약 13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당시 약 20억 달러는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00조 원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과 인력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어요.

보안 유지에 유리한 넓은 영토 보유로 핵무기 개발에 적합했던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적국의 과학자를 영입했다?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독일 출생으로 세계 최고의 로켓 과학자로 현대 로켓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미국 NASA의 수장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베르너 폰 브라운은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의 나치주의자였고 독일에서 로켓 개발자의 꿈을 키웠고 나치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로켓 개발에 착수하여 그가 개발했던 한 기구는 전쟁에 이용되었고,, 수많은 사상자를 나왔다.

 그는 대중에게 "내가 개발한 로켓이 무기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회의를 품었다"며 미국으로 건너온 이유를 설명하였고 사람들은 그를 목숨을 걸고 나치에 맞선 영웅으로 칭송했다.

핵무기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인재를 영입하여 핵 실험이 이뤄짐.(운동장에서 핵실험을 하고 도서관까지 세운 시카고 대학교)

엔리코 페르미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적국인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원자로를 건설하였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연구팀이 이 일을 맡았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카고 대학교 운동장에서 핵반응 실험을 하였고 그 성공 기념으로 도서관 핵실험 기념 조각상을 지었다. 

트리니티 테스트(Trinity) 핵무기 코드네임으로 인류 최초의 핵실험에 사용된 명칭으로 미국에서 실행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이다.

당시에는 초특급 일급 군사기밀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 실험이 공개되었다.

보안 유지를 위해 1. 코드명 사용하였고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최초의 핵무기 실험을 단행하였다.

2. 보안 유지를 위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힘든 사막을 선택하였고 

3. 정확한 실험 관측을 위해 평평한 지형을 선택하고

4. 멀리 있는 것도 잘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는 넓은 장소를 선택하여 

최적의 장소로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으로 선정하였다.  

이 실험에 약 90여 명의 사람이 참여했는데 사람들 눈앞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기괴한 모양의 핵폭탄 가제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트리니티 실험에 사용된 핵무기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으로, 가젯(Gadget)이라는 코드명이 붙여졌다

그냥 물건 또는 장치라는 뜻이다.

맨해튼 계획의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물건, 장치, 심지어는 그냥 '그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에는 기밀 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겉으로 볼 때나 실상이나 "폭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이에 대한 미국의 대반격으로 세계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하게 되는 미국이다. 

케이블과 기폭 장치가 얽혀있는 모습으로 드디어 점화된 핵폭탄 가제트~~~~~!!!

이 위력은 약 12Km 높이 버섯구름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폭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 실험이었다. 

이 것은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실험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영상은 카메라, 필름, 렌즈 정보로 검증되었습니다. 

실제 트리니티 실험 모습으로 트리니티 실험 전 최종 조립하는 모습

이 장치는 사막의 모래를 녹이고 밤을 낮으로 바꿀 위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수 백만 분의 1초 만에 모든 무기들 쓸모없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714, 실험 이틀 전 30m 높이의 철탑 꼭대기에 가젯을 설치하는 작업이 끝나고 16일 실시될 실험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했으나 15일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다시 실험 시간이 조정되어 다음날 530분으로 재조정되었다.  

 오전 5시 31분 커맨드 벙커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일반 폭탄을 피하듯 엎드려 있는 모습

버섯구름은 지상 12km 높이까지 솟아올랐으며, 40km가 넘는 곳에서도 화구를 관측할 수 있었다.

240km 거리에 있던 사람도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이 하늘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km 밖에 있던 한 폐가는 부서져 버렸으며, 

충격파는 260km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을 넘어뜨릴 정도였다고 한다.

다시 봐도 소름 돋는 핵폭탄의 위력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최초의 핵무기 실험을 단행하여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나

그 위력이 TNT 20kt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측정되었다.

폭발을 지켜봤던 과학자들이 말하길 

강렬한 빛이 수 km 떨어진 산을 낮보다 환하게 비췄고 

16km 떨어진 본부에서도 강렬한 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낮의 태양보다 몇 배는 더 큰 강도의 빛이 사방에 쏟아졌다.

눈이 완전히 멀어버렸고 30초가 지난 다음에야 시력을 되찾았다. 

최태성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아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고 

핵폭탄 폭발 시 발생하는 강렬한 빛과 뜨거운 열로

신체 보호를 위한 대비책 마련하였는데 트리니티 테스트를 참관한 뉴욕타임즈 기자는 과학자들의 대비책을 보고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고 표현하였는데 과연 그 방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엄청난 열을 예상은 했던 과학자들~~~~~~~~~~~~~~~~~~~~~~~~~~~~~~~~~~~~~~~~~~